세상사는 이야기

[스크랩] 雙 舞.....

하늘 나라 1 2008. 1. 22. 16:30


외팔로 춤을 추는 처녀 2007년 4월 20일 밤, 중앙텔레비죤방송국무용경연에서 외팔처녀와 외다리총각이 출연한 쌍무《손을 잡다는》는 국내외의 선수들이 참석한 7000여개 절목중에서 유일한 장애자그룹이였지만 99.17점이란 높은 점수로 은상을 따냈다.

2002년 4월, 북경 동쪽 교외에 자리잡은 어느 예술단에서 사업하는 친구를 찾아 온 리도는 창문옆에서 책을 읽고있는 처녀에게서 시선을 뗄수 없었다.

 창문으로 비쳐들어오는 봄날의 해빛에 눈부신 옆모습이 성모 마리아를 방불케 했다. 활발한 그는 처녀한테로 다가가면서 큰소리로 불렀다. 《어이, 마리아!》 머리를 돌린 처녀는 의아해서 물었다.

《손님은 어떻게 내 이름이 마려(마리아의 앞 두글자 마리와 마려는 한어로 음이 같음)인걸 아시나요?》 그러자 리도가 깜짝 놀랐다. 《거기 이름이 정말로 마리아입니까?》 그때 리도의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임마, 이 아가씨의 이름은 마리아(玛利亚)가 아니라 마려(马丽)야!》 리도는 게면쩍어서 자신이 가지고 온 대추를 그녀의 오른손에 쥐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왼손에 책을 쥐고있는 그녀는 오른손을 호주머니에 넣은채 까딱 안하고있었다.

 열정적인 리도는 그녀의 오른팔을 잡다가 깜짝 놀랐다.

가짜 팔이였던것이다. 마려는 왼손으로 대추를 받아쥐면서 《고마와요. 그건 의수예요》하고 말하고는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하남성 주마점시에서 출생한 마려는 어려서부터 춤추기를 즐겼다.

1995년, 19살에 예술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청도예술단에 들어가 발레를 추었다. 그때 마려는 한송이 부용꽃처럼 아름다왔고 잘생긴 남자친구 류회강이 날마다 그녀곁을 지켜주고있었다.

1996년 여름, 마려는 휴가를 맡고 주마점으로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을 잃었다. 당시 류회강이 새로 산 자가용차를 몰았는데 갑자기 화물차 한대가 뒤에서 달려오며 그들의 차를 들이박았다…

 마려가 깨여났을 때는 이틀후였다. 몸에는 여러가지 의료의기의 선이 접속되여있었고 오른쪽 팔에는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면서 류회강이 그녀를 병원에 호송한후 증발하였다고 알려주자 그녀는 다시 혼절했다. 마려는 오른팔이 중상을 입었기때문에 팔을 살리려면 빨리 다른 병원에 옮겨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거액의 치료비가 문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급급히 사고를 친 운전기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주동적으로 마려의 치료비 5만원을 이미 류회강에게 주었다고 알려주었다.

량심없는 류회강은 녀자친구의 치료비를 가지고 도망친것이였다.

돈이 없어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한 마려의 오른팔은 감염되여 절단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른팔을 잃은 마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는 말없이 먼 하늘을 바라보기만 했다. 퇴원한지 얼마안되여 마려는 류회강이 보내온 《나는 이전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예는 그대를 사랑하였소.

그런데 지금 날개를 잃은 나비가 어떻게 날수 있겠소? 나를 원망하지 마오.》 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를 읽은 그녀는 손목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다가 부모가 제때에 발견하였기에 위험에서 벗어났다.

 눈물에 젖은 부모의 초췌해진 얼굴을 본 그녀는 다시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왼손으로 밥을 먹고 빨래를 하는 연습을 했다. 그녀는 자그마한 서점을 차려서 자립하면서 꿋꿋이 살아나갔다.

2001년 6월, 하남성장애자련합회에서는 원래 무용배우였던 그녀를 제5기장애자문예공연에 출연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용은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러 무대에 나가 내 못난 모습을 보일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이전에 공연하던 비디오를 틀어놓고 그녀를 보게 했다.

아픈 기억이 살아나면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제가 아직도 춤을 출수 있을가요?》 딸의 말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무용의 령혼은 마음이야. 오직 네 마음속의 풍부한 내용만 나타낸다면 그 춤은 아름다운거야!》

그 말에 힘을 얻은 마려는 무용복을 갈아입고 거울앞에서 무용연습을 시작했다. 한달동안의 연습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른 그녀는 무용 《황하의 딸》로 금상을 수상받았다.

무용은 다시 그녀의 삶을 활기 띠게 했다.

 그녀는 상을 받은후 당지의 공연에 출연하다가 북경의 어느 예술단에 들어가서 리도를 만났다.

1982년 연안에서 출생한 리도는 2001년에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북경에서 떠돌이생활을 하고있었다.

그가 두번째로 마려를 만났을 때는 연습장에서였다.

외팔로 돌아가는 그녀의 춤자세는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그녀의 순결한 눈빛에 담긴 애틋한 비애는 령혼의 박투를 보든듯 했다.

 부지불식간에 리도의 눈은 축축히 젖어있었다.

한곡이 끝나자 그는 마려한테 다가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님의 춤추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난 진심으로 누님이 유쾌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리도는 년상인 마려를 누나라고 불렀다. 마려는 그의 관심에 따뜻함을 느꼈다.

그후 리도는 늘 마려를 찾아와서 그녀를 도와 빨래를 하고 밥을 짓기도 했다. 그는 어느 한번 밥을 짓다가 마려를 보면서 《누님, 내가 한평생 누나의 밥을 지어드리면 안될가요?》하고 물었다.

그 말에 마려는 멍해졌다. 얼마후 정신을 수습한 그녀는 《리도씨는 아직 어려서 이 말의 뜻을 잘 모를거요》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누가한테도 말하지 않던 류회강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말했다.

《내 마음은 이미 죽었소. 사랑은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하오! 난 다시는 아픈 사랑을 하지 않을거요!》

《난 누님을 아프게 하지 않을겁니다! 한평생 누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리도는 진심으로 고백하면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이튿날, 마려를 다시 찾아간 리도는 그녀가 말없이 어디론가 사라진것을 발견했다.

 그는 급해났다.

북경의 각 무용공연단을 찾아다니면서 수소문했으나 그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증발한것만 같았다.

리도는 반달동안이나 출근하지 못하다보니 직장에서 쫓겨 났다.

그의 부모는 화가 나서 전화로 《이 못난 자식아! 너보다 다섯살이나 년상인 외팔처녀때문에 그 지경이 되다니? 빨리 돌아와!》하고 질책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마려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있는 마려를 찾았다.

그는 마려의 오른손이 되여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고백했다.

 그의 진정한 사랑에 감동된 마려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안겼다. 그들의 사랑은 부모들의 반대를 받았다.

리도의 부모는 나이 많은 외팔처녀와 결혼하겠으면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고 마려의 부모는 딸이 또 한번 상처를 입을가봐 나이 어린 사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리도는 마려의 왼손을 잡고 그녀의 오른손이 되여 사랑의 노래를 엮어갔다.

 2004년 9월, 마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리도는 시험을 쳐 매니저(经纪人)자격증서를 따냈다.

하지만 인재가 집결된 북경무대에서 장애자가 발을 붙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듬해 상반년까지 그들은 군중역을 맡으며 힘들게 살아갔다. 그러다가 리도는 갑자기 령감이 떠올랐다.

그는 저명한 안무가를 찾아가서 마려의 실제경력인 말할수 없는 아픔과 령혼의 박투를 소재로 한 무용을 창작하는것이 어떠냐고 자기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마려의 경력을 듣던 안무가는 두 사람이 출연하면 효과가 더 좋을것이라고 하면서 마려와 함께 쌍무를 출 남자배우를 찾으라고 했다.

 2005년 9월, 그들은 4살 때에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효위라는 청년을 찾았다.

효위는 높이뛰기, 넓이뛰기 등 항목의 훈련을 받은 장애자운동선수였다.

여태껏 춤을 접촉해보지 못한 그는 마려의 공연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후 그는 마려한테서 춤을 배웠다. 마려와 효위는 리도가 창작한 무용 《손을 잡다》를 연습했다.

2006년, 옹근 1년동안 리도는 마려를 데리고 사처로 뛰여다니면서 중앙텔레비죤방송국과 호남성텔레비죤방송국의 프로에 참석했다.

2007년 3월, 그들은 무용 《손을 잡다》의 CD를 가지고 제4기 중앙텔레비죤방송국무용경연에 보명했다.

이 작품이 두 장애자가 추는 쌍무라는 말을 들은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사업일군은 깜짝 놀랐다.

무용경연이 시작된 4년래 해마다 몇천명 선수가 참석하였지만 장애자선수는 한명도 없었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출연한 《손을 잡다는》는 국내외의 선수들이 참석한 7000여개 절목중에서 유일한 장애자그룹이였지만 모든 관중들과 평심원들을 정복하고 99.17점이란 높은 점수로 은상을 따냈다.

이번 경연의 평심위원이며 2008년 북경올림픽개막식과 페막식이 부감독인 장계강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그들이 장애자라는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갈수 있는 힘을 보았습니다》하고 말했다. 《지음》

출처 : 행복한마을 아름다운사람들
글쓴이 : 사랑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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